정당성의 상실, 절차의 사망선고
김문수가 국민의힘 경선을 통과한 순간까지만 해도 ‘절차’라는 말은 아직 숨을 쉬고 있었다. 그런데 결과가 채 잉크도 마르기 전에 한덕수가 총리직을 벗고 무소속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지도부는 곧바로 김문수에게 단일화를 강권했다. 경선표는 휴지조각이 되었고 그 뒤에는 권성동·권영세 이른바 쌍권이 서 있었다. 그들이 들고 나온 논리는 “경쟁력” 한마디였지만 실상은 얼굴마담 대통령 하나 세우고 내각제를 열어 총리에 실권을 몰아주는 오래된 설계도였다. 책임은 흐릿해지고 권력은 여의도에 고이고 썩는다.
연금개혁이라는 이름의 강도
대통령 탄핵 선고가 확정되기 직전, 국회는 연금보험료율을 9%에서 13%로 소득대체율을 40%에서 43%로 끌어올리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부담은 이제 막 사회에 진입한 청년이 지고 혜택은 은퇴를 눈앞에 둔 586 기득권이 챙긴다. 통계 왜곡으로 집값 폭등을 숨기고 ‘아이를 낳지 않는 건 청년 탓’이라 눌러붙인 프레임처럼 이번에도 관료 언어는 ‘안정’을 주문처럼 반복했다. 숫자는 피를 흘리지 않지만 청년들의 월급에서 살을 깎아 간다.
청년들의 적 한덕수
여기서 한덕수는 결정적 동조자로 모습을 드러냈다. 재의요구권이라는 마지막 안전핀을 잡을 기회가 있었지만 그는 국무회의를 열어 국회에서 발의된 안건을 단숨에 처리했다. 그 순간 연금개혁은 되돌릴 수 없게 잠겼고 청년 한 사람당 평생 수천만 원의 부담이 확정됐다. 이 결정은 대통령 탄핵 결론이 나오기 전에 이루어진 것으로 야당의 압박 같은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 모든 책임은 관료적 무표정 뒤로 숨었고 세련된 강탈은 이렇게 완성됐다.
586의 본능, 절차를 삼키다
민주화를 외치며 정당성을 얻었던 586은 이제 권력을 놓지 않는다. 주택·일자리·연금·통계까지 모든 제도를 비틀어 다음 세대 몫을 잘라낸다. “절차를 건너뛴 후보 교체, 책임 없는 내각제 구상, 청년에게 청구서만 전가한 연금 법안” 세 가지는 한 문장을 반복한다. “절차는 번거롭다. 우리가 더 잘 안다.” 21세기가 들어선지 25년이 지난 지금도 그들의 시대 그때로 돌아간 한 문장. 관료 한 사람은 그 문장에 주저 없이 서명했고 광장의 열기를 기억하던 세대는 기득권의 침대에서 더 깊이 눕기 시작했다.
남는 결론, 무덤까지 들고 갈 국명
권력은 스스로 이양되지 않으면 분노를 마주하고 그렇지 못해도 세월은 끝내 남겨 두지 않는다. 분노가 터지지 않는다면 권력과 나라가 함께 시든다. 이전 세대가 피땀으로 일군 이 나라를 586은 명패째 들고 무덤으로 들어가려 한다. 젊은 세대가 잃어버릴 것은 월급 몇 푼이 아니라 미래라는 시간 전체다.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이 폐허 속 비석으로만 남는다면 그 책임은 오롯이 권력을 움켜쥔 늙은 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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