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오랫동안 ‘신’을 고용해 왔다.
자연재해가 닥치면 “신의 분노”라 부르며 그 뜻을 해석하게 맡겼고, 윤리와 도덕의 문제를 논할 때도 “신의 말씀”으로 기준을 삼았다. 신은 세상을 설계한 건축가이자 도덕을 지키는 감시자, 절망 속에서 희망을 주는 만능 해결사처럼 여겨져 왔다.
그러나 시대는 변했다. 과학이 자연현상의 비밀을 하나씩 밝혀내고, 철학과 법이 공동체의 윤리를 재정의하고, 개인의 권리와 자유가 존중되는 사회가 자리 잡았다. 종교적 권위에 맡겼던 많은 문제를 이제 인간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고 깨닫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결론을 내려야 할 시점에 와 있다. “신은 해고당했다.” 인간이 맡겨온 여러 업무와 책임을 공식적으로 회수하기로 했다는 선언이다. 한때 절대적 권위를 누렸던 신에게, “더 이상 함께할 필요가 없다”는 통보를 하는 것이다.
1. 입증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일부 유신론자들은 종종 “신이 없다고 확신하려면 그 ‘없음’을 증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무존재증명(없는 것을 입증하라는 요구)이라는, 논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실현하기 어려운 부담을 떠넘기는 일이다.
우리는 “유니콘이 없다”고 말할 때마다 온 세상을 뒤질 필요가 없다.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를 “없다”고 선언할 때 무(無)에 대한 증명을 요구하는 건 부당하다. 입증책임은 “신이 있다”고 주장하는 쪽에 있으며, 과학이나 역사 속에서 그러한 존재가 정말로 필요한 근거를 제시해야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2. ‘신이 있든 없든, 둘 다 믿음이다’라는 주장에 대하여
신을 믿는 사람들과 대화하다 보면 가끔 이런 말을 듣는다.
“신이 있다는 걸 믿지 않는 것도 결국 신이 없다는 걸 믿는 행위이니 일종의 믿음 아니냐.”
그러나 이는 궤변에 가깝다. “신이 없다”고 말하는 쪽은 보통, “신이 존재한다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보기 때문에 그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을 뿐이다. 이는 “신이 없음을 열심히 증명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과학과 합리적 사고가 예전부터 신이 담당해 온 문제들을 대체해왔고, 더는 초월적 존재가 필수적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에 가깝다.
무언가를 믿지 않는 태도는 그 반대를 맹목적으로 믿는 것과 다르다. “신이 없다”는 입장을 또 다른 맹목적 믿음으로 몰아가는 주장은 논점을 흐리는 오류에 가깝다. 게다가 앞서 말했듯, 신의 존재를 주장하는 쪽이 그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는 입증책임 원칙을 상기하면, “신이 없다는 걸 네가 증명하라”는 요구가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분명해진다.
3. 종교가 해온 역할은 인정
그렇다고 종교가 무가치하다고 단정 지으려는 것은 아니다. 인류가 오랫동안 종교를 믿어온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사람들에게 심리적 안식과 공동체 의식을 주었고, 윤리와 도덕의 길잡이로도 작동했다. 원시적 환경에서 절대자를 가정하고 여러 가설을 세우며 세상을 발전시켜온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어떤 사상을 따른다고 해서, 그 사상의 초월적 대상이 실제 존재함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삼인성호(三人成虎)”라는 말처럼, 여러 사람이 호랑이를 말한다고 해서 없는 호랑이가 생겨나는 건 아니다. 인류가 오랫동안 신을 믿었다는 사실만으로 신이 실존한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4. 과학의 발전, 그리고 줄어드는 신의 영역
과학이 발달하고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하면서, 신이 담당해왔던 많은 영역이 대체되어 왔다. 예전에는 기상 이변조차 “신의 분노”라고 여겼지만, 이제는 대기 현상과 기압 차이 같은 과학적 원리로 원인을 파악한다.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는 그의 저서 『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에서 “신이라는 가설은 더 이상 우리가 세계를 설명하는 데 필수적이지 않다”고 말한다. 한때 신은 과학적 탐구가 미치지 못한 영역을 채워주는 ‘공백의 설명’으로 여겨졌지만, 우주와 생명의 기원을 포함한 많은 문제들이 점차 해명되면서 그 공백은 계속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물론 당장 모든 종교가 사라질 것 같진 않지만, “신이 실존한다”는 믿음이 흔들릴 여지는 자연스럽게 커지고 있다.
5. 새로운 시대의 가치: 과학, 자유, 그리고 자율적 선택
“신은 없다” 혹은 “신을 해고했다”는 주장은 “아무것도 믿지 말자”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과학과 합리적 사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등은 오래전부터 인간이 스스로를 존중하고 발전을 추구하는 데 필요한 핵심 원리가 되어주었다.
과거에는 왕이나 종교가 절대 권위를 행사했지만, 오늘날에는 개인의 가치와 자유가 최우선으로 자리 잡고 있다. 비트코인 같은 사례를 보면, 중앙화된 통제 없이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신뢰 체계를 만들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과학과 제도, 인간의 이성이 결합하면 어떤 어려움도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커진 것이다. 그렇다면 굳이 신적 권위에 모든 것을 맡겨야 할 이유가 점점 사라지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6.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
결국 신을 믿느냐 마느냐는 개인의 자유다. “사람들이 많이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신이 곧바로 실존한다고 보긴 어렵다. 마찬가지로 “신이 있다고 믿지 않는 것도 결국 ‘신이 없다’는 걸 믿는 행위”라는 주장 역시 논리의 비약이다.
과학과 합리적 사고, 자유로운 의사결정의 세계는 이미 충분히 매력적인 대안이 되었다. 종교가 바로 사라지진 않겠지만, 사회가 발전해가는 흐름 속에서 “신이 꼭 필요하다”는 명제가 점차 설득력을 잃을 가능성은 크다. 무신론은 “신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지, “신이 없다는 맹목적 믿음”이 아니다. 지금까지의 과학적 근거와 합리적 분석을 종합해보면, “신이 있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는 태도에 가까운 것이다.
물론 종교인들이나 사람들은 신앙을 통해 여전히 의미와 위안을 찾을 수 있고, 그것을 무조건 부정할 필요는 없다. 다만 그 믿음이 곧 신의 존재를 객관적으로 증명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만 기억하길 바란다.
7. 신은 해고당했다.
여전히 “신의 빈자리는 허전하지 않을까”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과거에는 모든 미스터리와 윤리, 심지어 인간 내면까지 신의 테두리 안에서 해결해 왔으니 그 자리가 크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역사를 돌아보면, 신이 맡았던 일들은 과학과 이성, 그리고 인간의 협동과 제도에 의해 하나씩 회수되었다.
자연의 비밀은 실험실에서 해명되었고, 윤리와 도덕은 사회적 합의를 통해 다듬어졌으며, 삶의 의미와 목표도 개인의 철학적 사유와 자유로운 선택으로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신에게 기대었던 부분이 인간의 손으로 옮겨오면서, 오히려 책임감과 주체성이 높아졌다. 그래서 인류는 신을 해고해도 별다른 문제없이 살아갈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이다.
“신은 해고당했다.”
공백은 생각보다 혼란스러워지지 않았고, 오히려 더 합리적이고 책임감 있는 모습으로 세상이 바뀌고 있다. 신이 사라진 자리에 인간의 이성과 과학, 그리고 자유와 연대가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고용주로서 신에게 맡겼던 임무를 직접 처리할 역량이 생겼고, 신이라는 초월적 존재에 기대지 않아도 큰 어려움 없이 삶을 운영해나갈 수 있다.
결국 선택은 우리 몫이다. 신을 계속 남겨둘 수도, 과감히 해고할 수도 있다. 이 글은 후자의 결론을 택했을 뿐이다. 시대가 달라졌고, 우리가 원하는 방향도 달라졌다. 신 없이도 충분히 잘해낼 수 있다고 믿는다면, “안녕히 계세요”를 외칠 때가 된 것 아닐까?
해고된 신의 시대 이후, 우리는 어떤 세계를 만들어갈지 기대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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