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22일 오늘 새벽, 정부의 여권 무효화 제재를 비웃으며 가자지구 공해상으로 나아갔던 활동가 김아현이 이스라엘군에 나포된 끝에 인천공항으로 돌아왔다. 공항 입국장은 그녀를 ‘인도주의 투사’로 분장시키려는 진보 시민단체의 환호와 ‘불법 출국자’로 처벌하라는 보수층의 야유로 어김없이 반쪽짜리 소음을 냈다.
하지만 이 기괴한 소동의 본질은 영웅문학도, 단순한 돌출 행동도 아니다. 그것은 철저히 계산된 포식자들의 각본에 따라, 철저히 사상적으로 오염된 유한 계급의 인형들이 춤을 추는 인형극의 한 장면에 불과하다고 본다.
1. 가짜 '자유'를 배달하는 이상주의적 맹인들: KFC를 찬양하는 치킨들
지금 전 세계의 이른바 ‘깨어있는 시민’들은 가자지구를 향해 “팔레스타인에 자유를!”이라는 구호를 목놓아 외치고 있다. 서방의 풍요를 먹고 자란 PC주의자, 성소수자(LGBT), 비건, 기후 위기 운동가들이 스크럼을 짜고 이스라엘을 거악으로 규탄하는 기괴한 연합전선이다.
그러나 이들이 애써 외면하는 진실은 차갑고 잔인하다. 김아현이 목숨을 걸고 ‘자유’를 배달하겠다던 그 목적지에는 역설적이게도 그들이 외치는 자유의 흔적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가자지구를 실질 통치하는 하마스의 영토는 종교적 근본주의와 공포정치가 지배하는 전체주의 테러 기지다. 야당은 숙청당했고, 여성의 인권은 지워졌으며, 성소수자는 발견 즉시 건물 옥상에서 던져진다.
자신들이 들고 있는 그 화려한 인권 깃발이 장벽을 넘는 순간 하마스의 칼날에 가장 먼저 찢길 것임을 모르는, 그야말로 ‘KFC의 징거를 찬양하는 치킨들’의 슬픈 연극이다.
2. 그람시의 유령: 문화 헤게모니와 반서방 진지전
이 지독한 자가당착은 단순한 지능의 문제가 아니다. 20세기 이탈리아의 공산주의 전략가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가 설계한 ‘진지전’ 교본이 2026년 현재까지 소름 끼치도록 완벽하게 이행되고 있는 결과물이다.
정통 마르크스주의의 총칼 혁명이 실패로 끝나고 노동자들이 중산층화되면서 동력을 잃자, 그람시의 후예들은 전략을 수정했다. 자유주의 체제를 안에서부터 무너뜨리기 위해 교육, 언론, 문화, 시민사회라는 사상적 ‘진지’를 야금야금 점령해 들어가는 방식이었다.
그들은 노동자 계급 대신 환경, 페미니즘, 성소수자, 비건이라는 ‘소수자 약자 팩’을 조립했고, 이를 교차성이라는 접착제로 묶어 거대한 반서방 전선을 구축했다. 하마스가 성소수자를 도살하든 말든, 진지전의 장수들에게 하마스는 미국 중심의 자유주의 질서(이스라엘)를 타격하는 훌륭한 ‘반란군 동지’일 뿐이다. 이 연극의 목적은 현지의 인권이 아니라, 서방 체제의 정신적 기둥을 뿌리째 흔드는 것이다.
3. 대한민국의 현주소: 단수(單手)에 몰린 흑돌의 비극
이 유령은 지금 대한민국이라는 바둑판 위에서도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고 있다. 본연의 임무인 노동 환경 개선을 망각하고 기득권 완장을 찬 거대 정치 노조가 느닷없이 반미 구호를 외치고, 환경 단체들이 가자지구 해방을 외치며 이스라엘 총리 체포영장 발부론에 군불을 땐다. 전형적인 진지전의 오염 상태다.
그 결과, 대한민국 외교는 지금 사방의 활로가 막힌 ‘단수’ 상태에 직면했다. 미·일·대만 중심의 서방 진영이 대중국·대이란 포위망이라는 사활을 건 진영 전쟁을 벌이는 시기에, 우리 지휘부는 국내 지지층의 감상주의를 겨냥한 얄팍한 ‘인도주의 퍼포먼스’에 휘말려 네타냐후 체포영장 검토라는 최악의 악수를 두었다. 나포된 김아현을 구출하겠다고 현 정권의 수장이 직접 나서 이스라엘과 외교 마찰을 자초한 것 역시 이 얄팍한 계산의 연장선이다.
미국 중심의 안보 우산에서 스스로 걸어 나가 엇박자를 내는 사이, 북한은 귀신같이 이 틈을 타 미국과의 직거래(통미봉남)를 노릴 것이며, 미국은 한국을 건너뛰고 가성비 좋은 대중국 압박망으로 판을 재편할 준비를 할지도 모른다. 한국이라는 흑돌이 통째로 따먹히기 직전의 형국이다.
결론: 눈먼 자들의 진지 속에서 죽어가는 대마(大馬)
진짜 비극은 이 거대한 글로벌 수읽기를 할 줄 아는 국민이 5% 미만이라는 사실에 있다. 대다수의 대중과 정치권은 공항에 들어오는 불법 출국자의 눈물에 감동하거나 분노하며, 우리 머리 위에서 대마가 죽어가는 줄도 모른 채 바둑판 위에 엉뚱한 돌만 놓고 있다.
그람시의 유령들이 파놓은 ‘도덕적 진지’에 함몰된 대한민국은, 지금 스스로 방어선을 허물며 자발적 고립의 길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 인형극의 막이 내린 뒤, 텅 빈 무대에 남겨질 청구서는 고스란히 눈먼 대중의 몫이다.
'통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OpenAI IPO 타이밍 (0) | 2026.05.27 |
|---|---|
| 패러글라이딩과 3차원 공간 (0) | 2026.05.26 |
| 6·3지방선거 패배를 설계하는 주역들과 불쌍한 국민들 (0) | 2026.05.19 |
| 시스템의 피를 빠는 자들: ‘목표가 유한한 이익집단’의 해부 (1) | 2026.05.13 |
| 영국의 2009년생 금연법, 미끄러운 경사길 (1) | 2026.04.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