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찰

남성성이 거세된 사회의 역설: 본능을 억압하며 번식을 요구하는 기성세대

hyunmook 2026. 9. 10.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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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문재인 정권 시기 안전속도 5030 정책과 자전거 속도 제한 강화가 도입됐고, 이는 세계적으로 확산된 보행자 안전 중심 도시 설계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 다만 한국은 이 흐름이 유독 빠르고 전면적으로 관철된 사례에 속한다. 표면적으로는 교통사고 사망자를 줄이기 위한 순수한 행정 조치였지만, 이 정책이 만들어낸 사회적 습속은 단순한 교통행정의 범주를 넘어선다. 최근 확산되는 러닝크루에 대한 반발, 웃통을 벗고 도심을 달리는 남성들에 대한 불편함의 표출은 같은 뿌리에서 자라난 현상이다. 사회가 물리적 위험과 원초적 생명력을 체계적으로 통제해가는 과정이 한국에서는 유독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통제되는 것은 속도가 아니라 남성성이다

테스토스테론은 위험 감수, 속도, 영역성, 신체적 과시와 밀접하게 연결된 호르몬이다. 진화적으로 이 기질은 사냥과 방어,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생존 도구였다. 그런데 고도로 밀집되고 문명화된 현대 도시는 이러한 기질의 발현 자체를 사고 위험과 사회적 불쾌감의 근원으로 재정의한다.

 

자동차의 속도를 30km로 묶고, 자전거의 속도를 인위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사고를 줄인다는 명분을 갖지만 동시에 신체 능력과 기계를 통해 스릴을 추구하려는 본능적 욕구를 봉쇄하는 효과를 낳는다. 웃통을 벗고 뛰는 러너나 무리 지어 달리는 러닝크루에 대한 불편함 역시 마찬가지다. 실질적인 위해보다는 원초적이고 통제되지 않은 에너지가 공공장소에 노출되는 것 자체에 대한 심리적 거부반응에 가깝다. 사회는 점점 더 정제되고 예측 가능하며 자극이 최소화된 공간을 지향하고, 그 기준에서 벗어나는 모든 날것의 활력은 몰상식과 민폐로 낙인찍힌다.

 

번식은 이성이 아니라 본능의 영역이다

번식과 육아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으로 철저히 비합리적인 선택이다. 아이를 낳는 순간 개인은 자유, 여가, 수면, 가처분소득, 커리어의 기회비용을 감당해야 한다. 게임, 스트리밍, 여행, SNS 등 대체 가능한 도파민 공급원이 넘쳐나는 시대에, 이 모든 손실을 감수하고 번식을 선택하게 만드는 것은 계산이 아니라 억누를 수 없는 생물학적 충동이다.

 

그런데 그 충동이 발현되는 조건 자체가 봉쇄되어 있다. 위험을 감수하고, 신체적 우위를 과시하고, 무리를 이루어 영역을 확장하려는 본능적 행동양식이 사회 전반에서 불편함과 민폐로 규정되는 환경에서, 정작 그 본능의 최종 결과물인 출산만을 골라 요구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인간의 호르몬 체계는 낮에는 순응하고 억제하다가 밤에만 스위치를 켜듯 번식 본능을 발휘하도록 설계되어 있지 않다.

 

억압의 또 다른 축: 이권을 내려놓지 않는 기성세대

물리적 남성성의 억압만으로는 그림이 완성되지 않는다. 청년 세대의 번식 본능을 봉쇄하는 두 번째 축은 경제적 진입장벽이며, 이 장벽은 기성세대가 쥔 자산에서 비롯된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확대는 흔히 저출산의 원인으로 지목되지만, 최근 국면에서는 원인이라기보다 결과에 가깝다. 맞벌이가 자아실현의 선택지가 아니라 생존의 전제조건이 된 것은 주거비 폭등과 시기적으로 정확히 겹친다. 집값이 감당 가능한 수준이었다면 외벌이로도 가능했을 가족으로서의 삶이, 자산가격 급등으로 인해 두 사람의 소득을 합쳐야만 겨우 유지되는 삶으로 바뀐 것이다.

 

교육비 문제도 이 자산 구조와 분리해서 볼 수 없다. 좋은 학군에 대한 수요가 대치동 같은 지역의 집값을 밀어올렸고, 그 지역 부동산을 먼저 선점해 자산을 축적한 것은 지금의 청년 세대가 아니라 기성세대다. 교육열이 부동산 가격에 자본화되면서, 정작 학군 프리미엄의 수혜자는 그 자산을 이미 보유한 세대이고,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것은 이제 막 가정을 꾸리려는 세대다.

 

결국 청년들이 마주한 것은 물리적 자유의 통제와 경제적 진입장벽이라는 이중의 벽이다. 한쪽에서는 위험과 활력의 발산을 규제로 억누르고, 다른 한쪽에서는 자산을 쥔 세대가 그 자산을 다음 세대로 넘기지 않은 채 진입장벽만 높여놓았다.

 

내로남불의 구조

여기서 세대 간 권력 구조의 모순이 드러난다. 지금 이 사회를 설계하고 규범을 정한 기성세대, 특히 민주화 운동과 고도성장기를 통과한 세대는 젊은 시절 집단적 물리력과 저항, 거리의 에너지를 통해 권력을 쟁취한 경험을 공유한다. 그러나 권력과 자산을 확보한 이후에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사회를 극도로 안전하고 예측 가능하게 만들고, 위험과 저항의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는 통로를 체계적으로 축소시켰으며, 동시에 자신들이 먼저 쌓아올린 자산은 시장에 풀지 않고 다음 세대의 진입을 더디게 만들었다.

 

그 결과 지금의 청년 세대는 신체적으로는 전성기에 있으면서도 그 에너지를 발산할 사회적 공간을 박탈당했고, 경제적으로는 노동의 정점에 있으면서도 자산 시장에 진입할 기회를 박탈당한 채 성장했다. 자신들이 젊은 시절 마음껏 누렸던 물리적 자유와 자산 형성의 기회는 스스로 걷어차 놓고, 그 기반 위에서만 가능했던 결과물인 출산을 후대에게 강요하는 것이야말로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다.

 

거세된 사회는 번식하지 않는다

출산율 저하를 경제적 지원금이나 캠페인성 구호로 해결하려는 시도가 반복적으로 실패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억압된 것은 통장 잔고가 아니라 본능과 기회이며, 이 둘은 보조금으로 되살아나지 않는다. 사회가 진정으로 출산율 반등을 원한다면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은 얼마를 지원할 것인가가 아니라, 청년 세대에게 활력의 공간과 자산 진입의 기회를 되돌려줄 의지가 있는가다.

 

기성세대가 낡아가는 아파트를 움켜쥔 채 함께 늙어간다면, 국가 역시 그들과 운명을 같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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